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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묻는다,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냐고

 

묻는다,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냐고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ㆍ외면하거나 억압하거나…한국 사회 적나라하게 기록한 2편의 영화
ㆍ나쁜 나라…세월호 그 후, 유족의 1년4개월 끈질긴 투쟁 과정 오롯이 담아
ㆍ불안한 외출…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배된 남자 출소 후 같은 혐의 또 씌우는 정부

병을 고치려면 일단 그 병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 병에 걸린 것인지, 병의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서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푸는 방법도 병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여태 그 문제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아주 세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기록해 보여주는 영화 두 편이 이달 개봉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와 <불안한 외출>이다. 두 영화의 감독은 세월호 참사와 국가보안법 문제를 필름 속에 담았다.

 



<나쁜 나라>는 지난해 4월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여 동안 유족들의 행보를 담은 영화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지적한 영화 <다이빙벨>이 지난해 10월 개봉했었지만, 유족들의 목소리를 이처럼 오랫동안, 오롯이 담은 영화는 <나쁜 나라>가 처음이다.

세월호 참사 원인 진상 규명을 위해 유족들이 국회 단식농성과 도보순례를 하는 등 끈질긴 투쟁을 해온 전 과정이 120분짜리 영화에 담겼다. 김진열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은 1년 4개월 동안 진도, 안산 분향소, 국회 등을 오가며 총 500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

<나쁜 나라>는 지난하고 지루하고 막막한 투쟁과정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았다. 유족들은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진상규명”이라며 정부에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꾸려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특조위가 출범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출범 이후에도 제대로 된 조사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됐다.

김진열 감독은 “<나쁜 나라>는 나와 타자와 국가를 비난하려는 영화가 아니다”라며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 우리 모두에게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는 영화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이번 영화를 내놓게 됐다”며 “영화를 본 시민들이 진상규명에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3일 개봉한다.

<불안한 외출>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 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인 윤기진씨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된다. 그는 자수 대신 수배자로 사는 삶을 택한다. 수배자 생활은 불안의 연속이다. 가장 행복해야 하는 결혼식날조차 식만 올린 후 경찰을 피해 급하게 도피한다. 체포 후 3년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나와도 쫓기는 듯한 생활은 계속된다. 검찰은 윤씨가 옥중에서 아내인 황선에게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북한의 정세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기소한다.

16년째 국가보안법과 분단문제 등을 다룬 영화를 만들어온 김철민 감독은 “지난 정권부터 다시 국가보안법을 강하게 적용하는 공안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회에서는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종북’ 프레임이 씌워진다”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덧씌워지곤 하는 종북 프레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1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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