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은 단연 안해룡·이상호 감독의 <다이빙 벨>이다. 이 작품은 공개되기도 전에 이미 레드카펫의 중심에 섰다.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일제히 <다이빙 벨>의 상영금지를 요구했다. 여기에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상영 중단을 요구하면서 <다이빙 벨> 논란은 정치권과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뚜껑(?)을 열리게 할 또 한 편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철민(36) 감독의 <불안한 외출>이 그 주인공이다. <불안한 외출>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으로 10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던 윤기진(40·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공동대표)씨와 한총련 방북대표로 4년 동안 옥고를 치른 황선(41·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영화다.
<다이빙 벨>과 마찬가지로 영화 외적인 이유 때문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김철민 감독과 윤기진씨를 지난 9월 26일 서울 대학로에서 미리 만나봤다.
김철민(아래 '김') : "<걸음의 이유>는 민중가수 '백자'씨를 통해 민중예술인들의 치열한 삶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 예술가의 고뇌와 시련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술과 운동의 접점을 찾아가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 <걸음의 이유>는 반응이 어땠나?
김 : "첫 작품인데 부산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호주 한국영화제 등에 초청돼 나름 주목받았다. 그런데도 극장 개봉은 못했다. 비록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민중예술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은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공동체 상영과 IPTV, 온라인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온라인을 통해서 언제든지 보실 수 있다.(웃음)"
- 두 번째 작품으로 다시 부산을 찾는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이다. 등장인물들의 경력도 화려하다. 윤기진-황선 부부는 한 종편에서 '종북부부' 1위로 선정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지난해 2월 시사평론가 이봉규씨는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윤기진-황선 등 '5대 종북부부'를 선정했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채널A>와 이봉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법원은 '1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런 '문제적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 :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문제가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자칫하면 '종북영화'로 몰릴 수도 있다.(웃음)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다. '위험하진 않을까?', '과연 상영은 가능할까?' 저도 고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확신했다.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정신 아닌가? 윤기진씨를 통해 분단체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하이힐 신고 경찰과 몸싸움... '역동적인' 그의 결혼식
▲ <불안한 외출>의 스틸컷. 국가보안법은 우리 가족을 불안에 빠뜨린다. | |
ⓒ 시네마 달 |
-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인데, 출연을 쉽게 결정했나?
윤기진(아래 '윤') : "출연을 결정하면서 고심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의 삶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자신의 일상과 삶이 드러나는 것이 꺼려지지는 않았나?
윤 : "거부감은 없었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김철민 감독에게 고마웠다."
-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도 그렇고, 탈북자간첩사건도 그렇고 여전히 국가보안법 사건은 황당한 경우가 많다. 윤기진씨 사건도 그런 경우 중 하나인데,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달라.
윤 : "대학교 1학년 때(1994년) 처음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살았다. 8·15 통일행사를 하다가 체포됐는데 졸지에 '빨갱이', '폭도'로 몰렸다.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고 잡혀갔는데 징역까지 살았다. 그때는 이런 현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다. 그래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98년에 한총련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10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수배 중이던 2004년에 황선씨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고, 2008년에 체포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도 호전되고 우리 사회도 일정하게 민주화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심 석방을 기대했다. 적어도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감옥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가 또 문제가 됐다. 편지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사대정부로 폄하하고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옥중 편지는 교도소 측에서 모두 검열한다. 또 교도소 측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만일 옥중 편지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그것은 검찰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런데 검찰은 자기들이 검열한 편지를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했다. 웃기는 일이다. 2012년 2월 말에 만기 출소했는데 옥중 편지 때문에 3월 말에 다시 기소됐다. 그리고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법정구속 됐다. 감옥에 7개월 동안 수감되었는데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출소했다.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 과거에도 옥중편지로 처벌받은 양심수가 있었나?
윤 :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신영복, 김남주, 김지하. 이런 분들도 감옥에서 쓴 편지로 책을 냈는데 당시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변호사들도 이런 사례가 없기 때문에 무죄를 확신했다. 그런데 1심에 무려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모두 황당해했다."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차라리 구속되니 홀가분"
-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의 다큐멘터리라 작업과정 중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듯하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김 : "사실 오래 전부터 윤기진씨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배 중에는 윤기진씨를 만날 수조차 없어서 촬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촬영을 했다. 그런데 출소 이후에도 재판 중이기 때문에 외부활동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다양한 내용의 촬영이 쉽지 않았다.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 초점을 뒀다. 특히 아내인 황선씨가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잘 드러나지는 않아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웠다. 아마도 많이 힘들었고 어려웠을 텐데 황선씨도 통일운동가라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 촬영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
김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재판이 연기됐을 때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가족들이 다들 대단히 불안해했다. 불안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근데 법원에서 재판이 연기됐다는 통보가 왔다. 그 소식을 듣고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순식간에 평온을 되찾은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세 번의 투옥, 10년의 수배 그리고 5년의 징역을 살았다. 보통사람은 견뎌내기 힘든 일인데 이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윤 : "물론 수배와 투옥은 힘든 일이다. 감옥에 있으면 답답하고 힘들다. 하지만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 감옥생활 그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운동하고, 책도 보고, 주말에는 영화도 본다.(웃음) 그곳에도 나름 생활이 있다. 오히려 출소 이후에 더 힘들었다. 다시 구속영장이 나오고 언제 다시 감옥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차라리 법정구속되고 나니까 홀가분해졌다."
▲ 2005년 10월 평양 문화유적답사 행사에 참석하던 도중 평양산원에서 딸을 출산한 황선씨. 딸과 함께 도라산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귀환했다. 가족과 통일운동단체 관계자들은 임진각에서 황선씨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환영식을 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수배 중이었던 남편 윤기진씨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수배 중이라 결혼식도 황선씨의 모교인 덕성여대에서 했다. 결혼식 분위기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윤 : "결혼식이 원천봉쇄됐다. 결혼식장에 못 갈까봐 3일 전부터 학교에 숨어 있었다. 여대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결혼식 당일에는 경찰들이 하객들을 일일이 수색했다. 장인어른이 퇴직 경찰이라 후배들도 많았다. 장인어른이 경찰들에게도 축의금을 받았다고 한다.(웃음)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함께 경찰을 따돌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여성 하객들도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함께 달렸다. 도중에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도 그 장면들이 나오는데 함께 뛰었던 하객들의 모습을 다시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 대단히 영화적인 장면인데 작품에는 잘 묘사됐나?
김 :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다.(웃음)"
- 아직 재판이 아직 안 끝났다. 해피엔딩이 될 것 같은가, 아니면 새드엔딩이 될 것 같은가?
윤 :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쓴 편지 때문에 이미 7개월이나 징역을 살았다. 억울하고 분하다. 물론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면 명예는 회복된다. 하지만 잃어버린 7개월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또 재판기간 동안 가슴 졸이면서 살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무죄가 나오더라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김 : "윤기진씨가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버리지 않는 한 아마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되기까지 제2, 제3의 윤기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단체제가 극복되고 국가보안법이 사라지기까지는 새드엔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되면 주인공에게 각별한 인상을 받을 것 같다. 김철민 감독이 보는 윤기진씨는 어떤 사람인가?
김 :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윤기진씨는 매우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한총련 의장, 10년간의 수배생활, 수차례의 투옥까지. 지금도 진보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하지만 함께 작업을 하면서 윤기진씨는 여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런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윤기진씨는 예상 외로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인물이다.(웃음)"
<다이빙 벨>보다 더 센 영화... "재미있다 꼭 보시라"
- 내부시사가 끝난 걸로 아는데 작품은 만족스러웠나?
윤 : "정말 좋았다. 뭐랄까. 영화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잘 담겨서 정말 좋았다. 시사회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짧게 언급되지만 학생운동, 통일운동의 역사도 잘 담겨 있다. 특히 제가 운동을 왜 시작했는지 답하는 인터뷰 장면이 나오는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내 진심이 잘 담겨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나?
김 : "분단체제가 만드는 불안한 현실, 답답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윤기진·황선씨는 일부 언론에서 매도하는 것처럼 '종북부부'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분단체제가 어떻게 평범한 젊은이를 투사로 만드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윤기진씨를 영웅으로 그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평범한 사람을 평범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 <불안한 외출>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경쟁작으로 초청됐다. | |
ⓒ 시네마 달 |
-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무거운 주제인데 관객들과의 소통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나?
김 : "부산국제영화제에 수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출품되는데 그중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작(<걸음의 이유>)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쟁쟁한 선배 감독들의 훌륭한 작품들과 함께 상영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불안한 외출>도 관객들의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한다. 전작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영화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극장 개봉은 확정됐나?
김 :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배급사와 상의하고 있다. 아마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개봉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 마지막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불안한 외출>을 꼭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씩 해달라.
윤 : "한국사회엔 여전히 눈물과 상처가 많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그중에서도 특히 알려지지 않은 소재이다. 국민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보안법과 양심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 : "국가보안법, 분단, 이념 이런 이야기들이라 관객들이 딱딱하거나 너무 무거울 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따뜻하고 보편적인 감성의 영화이다. 재미있다 꼭 보시라.(웃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논쟁적인 작품들을 주저 없이 레드카펫으로 불러낸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의 예술적 원칙주의도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인터뷰 내내 김철민 감독과 윤기진씨는 진지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아마도 <불안한 외출>은 그들처럼 진지하면서도 딱딱하고 무거운 작품만은 아닐 듯하다. 물론 평가는 국가가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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