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언론 기사

[민중의 소리] [리뷰]국가보안법이란 괴물에 파괴당한 일상… 영화 ‘불안한 외출’

[리뷰]국가보안법이란 괴물에 파괴당한 일상… 영화 ‘불안한 외출’

영화 ‘불안한 외출’
영화 ‘불안한 외출’ⓒ기타

영화 ‘불안한 외출’을 보기 전엔 날카로운 칼과 어두운 풍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어둡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불안한 외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윤기진 황 선 부부의 일상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재미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는 날카로운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았지만 국가보안법이 과연 무엇인지,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윤기진 씨는 학생운동을 이유로 10년간의 수배생활과 5년의 감옥생활을 했다. 수배 중에 윤 씨는 결혼을 했고, 두 딸도 낳았지만 가족과 함께 살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그의 소박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그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2011년 출소를 하루 앞두고 감옥에서 쓴 편지를 빌미로 다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영장이 기각되면서 출소할 수 있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얼마 뒤 2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그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됐지만 검찰의 항소로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의 삶을 옥죄는 사슬은 부인인 황 선 씨에게도 이어진다. 황 씨가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함께 통일을 주제로 열었던 토크콘서트를 수구세력들은 이른바 ‘종북 콘서트’라 몰아세웠다. 종북몰이 광풍이 불었다. 한 고등학생이 콘서트장에 사제 폭탄을 던졌다. 검찰은 황 씨를 구속했다. 지금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얼마 전 검찰은 황 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부부를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부부에겐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았다.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부부가 번갈아가며 감옥에 갇혀야 했다. 그러면서 소중하게 주어진 감옥 밖의 시간은 ‘평범한 삶’이 아니라 ‘불안한 외출’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불안한 외출’ⓒ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불안한 외출’은 부부의 아이들에게도 고통스런 시간이다. 출소 1년 만에 다시 구치소에 갇힌 아빠를 면회하며 어린 딸은 천진하게 ‘메롱’이라고 장난을 친다. 늘 갇혀있는 아빠를 보아왔던 딸들에게 슬프게도 ‘갇혀있는 아빠’는 낮선 장면이 아니었다. 낯선 장면은 아니지만 그런 현실은 딸들에게 혼란을 가져온다. ‘아빠가 왜 잡혔냐’는 질문에 딸은 “착한 일은 해서”라고 말한다. 착한 일을 하는데 아빠가 잡혀가는 현실을 우리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은 아이들에게 설명조차하기 힘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말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지만 국가보안법이 가진 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괴물에 맞서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숙명처럼 여긴다. 가끔 괴물에 맞서다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혹시 빌미를 준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윽박을 지르게 만든다. 괴물에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괴물의 지배는 세련되어져서 과거처럼 총을 쏘고, 고문을 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 이상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괴물은 우리의 삶 도처에 숨어있다. 내가 살기위해 이웃의 얼굴에서 악마의 상징을 찾게 만든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에 ‘종북’ 딱지를 새겨 넣게 한다. 영화 ‘불안한 외출’은 그러한 국가보안법의 잔혹한 위력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이 영화 평점은 2점 또는 3점에 불과하다. 자칭 ‘애국자’들의 평점 테러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평점 0점을 준 이들 대부분은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빨갱이’와 ‘종북세력’들로부터 우리나라의 존립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그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영화는 오는 12월1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