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보안법 위반에 걸리게 되면 어떤 고생을 하는지 윤기진은 몸소 보여준다. 민주주의 공화국임을 내세우는 대한민국엔 아직까지 확실히 사상의 자유가 없다. 궁극적인 명분이 통일이라고 해도 이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통일의 과정이 아닌 기존 집권 세력이 대한민국 건국 후 줄곧 유지해 왔던 적색 공포심이 전제된 이적 행위가 된다.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지존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을 다루며 90년대를 복고 열풍에 대한대조적인 시선을 견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외출’도 윤기진이 한총련으로서 운동을 했던 90년대 영상으로 회귀한다.
당시 ‘문민정부’라고 하는 YS의 시기에도 온갖 험악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지존파를 통해 사형선고가 군사정권보다도 많았다는 사실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YS까지의 정권 실세들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증거다.
이는 사복 경찰이 한총련을 진압하는 장면과 80년대 민주화 시위가 탄압 받는 모습의 유사성에서 입증된다.
국가가 이적행위라는 주홍글씨를 찍은 윤기진과 그의 아내 황선의 삶은 피폐하면서도 강단있게 유지된다. 일반 가정을 이뤄본 적 없는 두 부부 사이에 태어난 두 딸은 갑작스런 아빠의 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윤기진도 아주 당황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혈연이라고 해도 장기간의 이별은 이들에게 결핍된 적응의 시간이 가져다주는 어색함 탓에 일반 가족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가 힘들다.
윤기진과 황선은 국가 보안법 위반을 저지르기 이전에 두 딸의 엄마, 아빠다. 이 둘의 부모 노릇을 하려는 모습에선 그 어떤 이적행위도 발견할 수가 없다. 두 딸에게 사상교육을 하거나 북한을 찬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한번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 온갖 감시와 트집을 잡고 가만 놔두지 않는다.
국가 보안법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해 온 이들에겐 인권은 주관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사안이다. 출소한지 1년 후인 2012년에 윤기진이 다시 아내 황선과 주고받은 편지로 재판을 받게 되는 현실은 공권력이 특히 국가 보안 사범, 정치범들에게 엄청난 감시와 그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모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드러낸다. 편지는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또 다른 감시의 증거로 악용될 뿐이다.
작품은 윤기진이 한총련 출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윤기진이 청년 시절 활동했던 사상의 옳고 그름엔 관심이 없다. 국가 보안법이라는 기득권 체제 유지 법안의 눈 밖에 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져 가고 이를 극복할 길이 요원해 보임을 보여준다. 종편 채널에선 이 둘은 최악의 종북 부부라 명명하고 간첩이나 다름없는 범죄 행위를 했다는 누명을 덮어씌우기 급급하다.
당사자인 윤기진과 황선부부는 둘 다 교대로 교도소를 드나드는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어떻든 자라나는 딸들 앞에 두 부모는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이게 됐고 다시금 공권력의 희생양으로서 이 땅에 사는 이상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이 드러난다.
아울러 아직도 이 시대가 냉전 체제의 공포 분위기 형성에 혈안이 되어 있음을 접하면서 역시나 대한민국의 정치 성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이 밀려온다. 이런 감시와 처벌을 애국으로 포장하고 온갖 범죄행위를 하면서도 ‘나만 했냐?’라고 뻔뻔한 낯을 들고 다니는 이들에게 애초에 바랄 건 없지만 이런 무지 몽매에 빠져 있는 이들 때문에 인생이 나락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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