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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관객 리뷰

<불안한 외출>, 불안한 공감대


김철민 감독의 <불안한 외출>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통일운동 활동가 부부 가족이 겪는 비극을 보여주는 다큐 영화다. 이 영화는 나에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한가지는 나에게 아득한 90년대 한총련 세대에 대한 기억이다. 학생운동 역사 중 가장 조직적이고 전투적이던 때이다. 난 그 때 어디에 있었나?  연세대 등에 쫒아 다닌 기억이 나는데 그 곳에 누구랑 있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서울노운협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난 매일매일 진행되는 학생운동세력과 통일운동세력의 거리 시위 속에서, 최루탄를 맞으며 여기저기 몰려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운동 세력과 세대적 차이가 나서 인지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세력과의  집단적 경험  공유가 적다. 그래서 어떤 희생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탄압이 지금과 비교하면 대단히 폭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운동에 대한 응원은 지금보다 높았었다. 통일운동이 현재의 통일운동보다 전투적, 폭력적이었어도 지지 세력은 지금보다 광범위했다.

 나머지 한 가지는 통일운동 세력에 대한 현재 운동권이 가지고 있는 평가이다.  한총련 세대와 전대협 세대가 운동권에서 사라진 오늘 , 통일운동세력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이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가. 오히려 인권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통일운동 그 자체보다 주도 세력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한총련, 전대협 주도 세력이 가지는 가부장성,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통진당의 사태는 통일운동의 세력에 대한 비판을 더욱 노골화시켰다. 통진당의 주요 세력은 통일운동의 주요 세력이다. 이들의 비민주성, 정파적 편파성이 외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드러나고 왜곡된 면이 있었으나, 사실상 이들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일운동 세력에 대한 비판이 통진당 사태로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IMF와  2008년 이후 경제적 위기 속에서 국민들에게 통일은 당위적 가치로서 자리매김할 수 없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개인의 생존이 각팍한 조건에서 통일운동에 대한 응원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런 속에서 우리 남한 국민에게 보여지는  북한의 상황, 지도자의 이미지는 낡고 고답적이다.  변화가 보이지 않는 븍한의 상황은 통일에 대한 관심을 저조시키는 데 기여를 했다. 이런 분위기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반북적 정책, 기조때문이라고 전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북한이 위협적, 호전적이기 때문에 북한과 거리를 두는 의식과는 다른 점이다. 북한 지도자와 사회가 위협적이 아니라 해도 한국의 국민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격차가 존재한다고 국민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의식이 북한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 세력에 대한 응원을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불안한 외출>  황선, 윤기진 부부가 황당무게한 탄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탄압에 대한 저항과 공감이 크지 않은 것은 종편을 비롯한 언론 등이 만든 악마만들기, 종북 낙인찍기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국민 이전에 개인의 존엄을 위해서 활동하는 의식적 운동세력조차 황산, 윤기진 부부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들이 사회를 전복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격리시키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가.  이들이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도 마땅하지 않다. 그리고 개인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개인적 인권은 얼마나 보장될 것인가.  통일운동 세력이 인권운동 세력과 연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 불안한 연대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 불안한 외출> 속에 이 가족에 가해진 정부의 탄압을 보는 것 보다 더 괴로운 것은 이러한 탄압에 함께 하지 못하는 운동권 내의 큰 장벽이다.  

 

 나의 가물가물한 기억만큼 , 통일운동세력이 사회에서는 가물가물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