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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관객 리뷰

'불안한 외출'은 참 고마운 영화다


정주희님 후기



좀 늦었지만 '불안한 외출' 후기 올립니다.^^
6월20일 춘천 상영회는 30여 명의 관객이 모여 아기자기하게 치렀습니다. 좋은 영화라 고마웠고, 함께 해주신 분들께 고마웠습니다.


**'불안한 외출' 감상


나는 ‘인권’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의 권리를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다. 인권 침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와 여러 가지 원인들을 더 강조하여 알리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다. ‘불안한 외출’을 보면서 나의 그런 사명감이 늘 효과적일 수는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주인공의 인권이 침해되는 모습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 보는 이가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의 뿌리와 부당성 등에 대해 장황하게 담아내려 했다면 그저 작정하고 만든 교양다큐가 되었을 거다. 물론 작정하고 만든 교양다큐는 무척 필요하지만 이만큼의 울림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인공 윤기진은 수배생활 10년, 감옥살이 5년으로 2~30대 청년시절을 홀랑 날린다. 처절한 그 나날들에 놀랍게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슴만 뜨거우면 할 수 있는 ‘사랑’은 남들보다 더 뜨겁게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누리고 사는 사소한 것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따순 집밥, 포근한 이부자리에서 자는 단잠, 언제 어디든 마음대로 가고 누구든 선뜻 만나는 일,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고 싸우고 울고 웃는 삶…….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영화 속에서 부부는 눈에 띄게 나이가 들어갔고, 아이들은 커갔다. 그리도 오랜 시간을 ‘무권리’한 채로 그렇게 견뎌온 것이다. 대학시절 부터 데모 좀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으로 ‘남자어른’과 함께 살게 된 두 딸이 아빠에게 썩 다정하지 않은 모습이라 더 안타까웠고, 자식 옥살이에 영겁의 세월을 피눈물로 보내셨을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만 가슴을 찔렀다. 남편과 번갈아 감옥에 드나드는 것은 물론이요, 시부모님을 모시고 두 딸을 남편 없이 키워야 했던 통일운동가 황선의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은 더 말해 무엇하랴.


최첨단 비행체가 우주를 날아다니고, 앉아서 지구촌을 부감하는 이 경이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말을 통제당하고 있다. 우리가 멍청해서도 너무 과격해서도 아니다. 자신들의 무능과 부패, 사대와 매국의 본질을 감추고 국민 때려잡기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들 덕분이다. 그들에게 덤볐다가는 개인도 그 무슨 단체나 정당도 종북으로 몰려 박살이 난다. ‘불안한 외출’은 국가보안법의 끗발이 군사독재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직면할 수 있게, 또 그 피해자들의 아픔에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참 고마운 영화다.